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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Sunday and NOW

집착을 내려놓고 삶에 내맡기기

당신은 절벽에서 자라는 나무를 간신히 붙들고 있다. 또는 휩쓸리는 급류에 나무판자 하나 붙잡고 떠다니는 형국과 비슷하다. 그럴 때, 삶은 얄궂게도 그 나무판자, 당신의 삶을 지탱하던 그마저도 빼앗아가는 경우가 있다.

 

나도 그랬다. 온 세상이 흑백이던 우울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가 마치 신이 보낸 사람처럼 다가왔다. 병으로 두 번째 수술을 마치고, 세 번째 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었던 그날, 가족조차도 차가운 말만 하던 그 시기에, 그때 그가 우연히 같이 있어줬고, 이상하게도 그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됐다. 그런 그가, 너무나 쉽게 그의 지인에게는 나의 개인사를 이야기해서 화가 났던 그날. 궁지에 몰린 그가 던진 한마디에 나는 너무나 쉽게 툭 밀쳐졌다. 

 

그렇게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했으면 안 만났을거다.”

 

이 일은 마치 깊은 심해에서 겨우 뭍으로 올라와 숨을 헐떡이는데 다시 바다가 나를 심해로 끌고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울로 빠지는 느낌. 또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 그 자체였다.

 

허나 오히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집착을 놓아버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나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그것이, 실은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는 나의 생각, 나의 믿음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그때 그 집착을 놓고 온전히 눈앞에 삶에 내맡길 때, 우리는 내려놓기, 내맡김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그 배움의 끝에서, 우리는 처음 이 배움의 시작이었던 고통에 진정으로 감사를 느낀다. ‘덕분에 지금 이 행복을 찾게 됐다.’고 진심으로 느낀다.

 

우리는 누구나 장님이 앞을 더듬듯, 삶을 살아간다. 누구도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전히 숨을 쉬며 살아있다. 그 숨에 삶의 기쁨과 사랑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생을 유지하게 해 주는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느껴보라. 그 순간 사실 혼자서 겨우 앞을 더듬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부터 등 뒤에서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 같은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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